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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개발 실적서, 연구개발 실적 목록, 연구개발 경험 기술서, 연구개발 프로젝트 참여 실적, 포상 기록, 입소 후 연구계획서, 2인 이상 추천서, 대학 이상 졸업증명서 및 성적증명서...
역시...
행정직이라고 해도 최소 졸업증명서는...
"샌즈. 있잖아. 우리 천문대에서 일할래?"
... ...
여보세요.
네, 말씀하세요.
뭐야, 내가 잘못 걸었나? 소장님 맞으십니까?
새, 여보세요? 샌즈?
쉬는 줄 알았더니... 바쁜가 보네. 나중에 걸게.
아니, 아니. 괜찮아. 무슨 일이야?
음.
토리엘하고 얘기했는데... 괜찮다고 해서. 그렇게 급한 일도 아니었다고 하고. 곧 면접 볼 사람도 있다고 하고.
그래서, 전에 그 자리 아직 남아있어?
어.
그래, 당연하지. 내가 한 말인데. 음.
잠깐만... 일정은... 메일로 보낼게. 주소 주면 면접 일자랑 시간, 직무... 준비사항... ...테스트는 다음 주 중으로. 괜찮을까?
이미 구했겠지, 구했겠지 했는데...
나야 시간 넘치지. 그것보다 필요한 서류가 감도 안 잡히는데...
그건 걱정하지 마. 우리 천문대 그렇게 딱딱한 곳 아니니까. 넌 학위만 없다 뿐이지 사실... ...
시민등록증이랑 증명사진 2... 3매. 이력서 한 장이랑. 나머지는 메일로 알려줄게. 메일 주소 문자로 좀.
...어려운 결정이었을 텐데 고마워.
아마 거절하겠지, 거절하겠지 했는데.
무슨 소리야. 그건 내가 할 말이지.
...괜찮겠어? 정말로?
... ...응. 당연히.
괜찮아.
그래, 알았다... 문자 보낼게.
응, 샌즈. 좋은 밤.
g'night.
세상이 조용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시끄러웠는데 신기하지. 심장 소리가 잦아든 건가. 멈췄나?
"괜찮겠어?" 네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것도 같고 영원히 모를 것도 같다. 괜찮겠어? 괜찮겠냐고. 나를 곁에 두고도 네가 침착할 수 있을까?
유리잔 표면에 맺힌 수십 개의 물방울. 차갑다. 네 온도는 이것보다 조금 높다. 나는 무엇을 만지든 너를 상상할 수 있는 사람이다.
상상과 기억은 실제보다 미화된다고 많은 이들이 말했으나 나는 그럴 일이 없었다. 영원을 대가로 빼앗긴 망각과 몇 번이고 덧씌운 선명한 상상. 현실의 너는 이보다 더할 뿐이다. 괜찮겠어?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결국 이번에도 내가 만든 세계에서 산다. 너는 그렇다. 해바라기 꽃말을 기억해? 금관화 꽃말을 기억해? 노랗고 흰 색이 도는 꽃잎, 이파리를 잘라내어 너에게 안기면 그보다 더한 꽃다발이 없었지.
이 모든 것은 기억하는 사람의 몫. 나는 삶도 죽음도 걸 수 있다. 내가 잘할게.
저질렀군.
미루고 미루다 결국에는 이렇게 되는 거지. 끝까지 누가 떠밀어 주기만 바라다가...
직접 묻지 못하는 게 너무 많다. 모르겠다고 생각하다 보면 나 자신도 알 수가 없게 된다. 조심스러운 건지 무서운 건지.
무뎌지면 안 돼.
잘 하자. 잘 해야 한다.
"코스모스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그렇다면 이걸 너라고 하자.
나는 너를 심안에 비추어 바라볼 때마다 오싹해지고 목소리가 가늘게 떨리며 아득히 높은 데서 어렴풋한 기억의 심연으로 떨어지는 듯한 아주 묘한 느낌에 사로잡히고는 한다.
"그 울림, 그 느낌, 그 감정이야말로 인간이라면 그 누구나 하게 되는... ..."
당연한 반응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사진을 어디에 넣어둬야 좋을까? 어디에 두어야 같은 건물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을 너에게 달려가지 않을 수 있을까?
불확실하고 두렵다. 삶이 처음인 것만 같아.
이 감정은 전부 네 것이다.
앉으세요. 괜찮습니다.
미리 이야기했었지만 오늘부터 근무하게 된 샌즈입니다. 은하진화 분야 신입 연구원이고, 조직에 관한 내용은 사내 메일로 공지한 대로입니다.
많이 낯설겠지만 서로 생소한 만큼 가르쳐주고 이끌어주길 바랍니다.
이 시선...
샌즈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이쪽은 칼라 진, 당신 사수에요.
안녕하세요.
우수한 연구원이시고, 좋은 상사이자 동료일 겁니다.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에요? 같이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샌즈. 잘 부탁해요."
"너무 띄워주시는 거 아니에요? 같이 일하게 되어 기쁩니다, 샌즈. 잘 부탁해요."
첫날이니 무리하지 마시고. 근무 힘내세요. 저는 회의 때문에 이만.
예, 소장님.
규모는 크지 않은데... 딱 봐도 갖춰진 게 많아. 보통 이런 장비를 연구실까지 들이나?
하긴 괴물 덕에 세워진 곳이나 마찬가지니. 인간과 괴물의 화합의 상징 같은 장소였지. 지원받을 구석이 많았을 거야. 하지만 여기가 세워질 당시만 해도...
프리스크의 능력이 짐작가는군.
이런 곳의 첫 괴물 직원. 그것도 낙하산. 책임이 무겁다.
샌즈요. 그냥 샌즈. 칼라라고 불러도 될까요? 괜찮다면 악수 한 번.
*뿌웅*
웃음이 확 터진다. 긴장 푸는 데 이만한 게 없지.
긴 하루가 되겠어...
소장님, 퇴근 안 하십니까?
...당신은요?
heh, 웃네.
응?
아니, 오늘 내내 표정이 굳어있길래. 나 뽑은 거 후회하는 줄 알았지.
그런 거 아냐. 긴장해서 그랬지.
내가 신입으로 뽑혔을 때보다 긴장했거든.
알아. 무리해줘서 고마워, 진짜로.
네가 누구보다 잘 할 거 알아.
오늘 어땠어?
정신 없었지 뭐. 전산망 등록하고 툴 익히다 금방 갔어.
좋은 사람들이야. 최대한 안 쳐다보려고 노력하더라고. 못 참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불편하진 않았어? 아무래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이 정도면 양호한 편이지. 특히 칼라 씨가...
사수가?
이 동네 사람이라... 괴물에 익숙한 모양이야. 메타톤 프로그램도 자주 보나 봐. 덕분에 이야기 텄어.
그건 몰랐는데.
몰랐다고? 신경 좀 써라. 네 연구원이잖아.
하하. 내가 신경 쓸 게 얼마나 많은데 그걸... ...
벌써 칼라 씨야? 빠르기도 하지.
솔직히 좀 긴장했었는데 다행이야. 살가운 사람이라.
NGC 6251 항성 블랙홀 후보를 발견했다며? 일반 공개된 논문이 아니라 궁금했었는데. 개인 아카이브까지 열어주겠다더라고.
그렇게까지? 네가 꽤 마음에 들었나 봐.
다행이야, 솔직히 걱정을 하긴 했거든. 내가 사람을 잘... 고른 것 같다.
너 지금 제법 들떴네?
해골이 좀 들뜰 수도 있지... 웃지 마. 거 참.
내가 뭘. 얼른 적응하고 동료들이랑 친해지고. 논문도 뽑아내고. 사람 잘 골랐다며 칭찬 한번 들어보자.
그래, 소장님 체면 구기지 않을게.
목표는 2년 내 수석연구원이야, 힘내. 샌즈.
아니 그건 좀... 말도 안 되지...
놀랍게도 말이 된단다.
대체 무슨 자신감이야.
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소장님. 너무 굴리지만 말아주세요.
이제 퇴근할까요?
이런, 내가 신입을 너무 오래 잡아뒀네. 내일 봐요.
감사합니다. 내일 다시 뵙죠.
*윙크*
*윙크*
아, 왜 그래.
후... ...
아니. 괜찮다. 이 정도야 예상 안이고. 직장생활 하면서 친한 동료가 생기는 것 정도야 이상한 일도 아니지. 단지 너무 빨랐을 뿐.
감정으로 일을 그르치는 건 이미 많이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는 너를 파헤치는 것은 잘 하니까. 네 사소한 제스쳐와 말투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아니까. 지금 넌 그냥 들떠 있을 뿐이야. 당연하지.
이렇게까지 속이 뒤집힐 일인가? 전엔 어땠더라? 전엔... ...그래, 언제?
괜찮은 척하고 있는 꼴을 봐. 하지만 뭐 어쩌겠어? 안 괜찮으면 괜찮게 만들어야지. 이제라도 최선의 선택을 하자고.
동료. 부하직원. 사수. 연구원. 아무렇지 않은 척. 이제 첫날이다. 마음에 걸릴 게 뭐가 있어. 여차하면 수는 많고.
나는 할 수 있는 게 아주 많고.
그렇지.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기분과 모든 걸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네 사진. 잘 자. 샌즈.
아.
오, 소장님.
식당 가는 중? 혼자네.
어, 먼저들 갔어. 너도 아직?
응. ...가운 맞췄구나. 놀랐어.
heh, 오늘 주더라고. 그래도 좀 크긴 한데...
잘 어울려. 평소보다 작아 보이고.
*웃음*
*웃음*
안고 싶다.
인간 기준이라 어쩔 수 없나 봐. 살이 없으니 키라도 좀 있어줘야 할 텐데 말야. 그렇게 웃기냐?
미안, 계속 웃어서. 그래도 키 큰 너라니 상상은 안 간다.
단추가 하얗고.
사원증은 아직 임시?
손도. 소매 안쪽도.
카드가 와야 한대. 내일쯤.
그렇구나... 어, 여기 뭐 묻었다.
슬리퍼, 뒤꿈치를 감싼 양말, 틈이 있는 종아리뼈.
바닥에 끌리는 것 같은데. 수선 부탁해봐.
이 작은 몸을 한 손으로 안아올리고 싶다. 옷깃을 쥐고 어깨에서부터 끌어내려 그 틈을 보고 싶다. 어떤 공기가 네 갈비뼈 사이에 머물러 있는가, 맛을 보고 싶다.
이 얇은 발목을 붙잡거나 묶거나 꺾어버리거나. 지금 당장 넘어트려서... ...
thanks. 이거 줄일 수 있어? 어디 가면 되나?
프리스크?
...응, 퇴근길에 행정실에 맡겨.
난 다시 올라가 봐야겠다. 사원증 안 들고 와서.
덜렁거리긴. 식당에서 보자.
*쾅*
예전의 나는 너를 꽃처럼, 하얀 포장지로 감싸 벽에 걸어두고 싶었다 움직이지도 못 하게 내 눈동자 색깔 리본으로 단단히 묶어 그대로 그대로.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은 벗기고 싶을 뿐 안아 올려 바닥까지 끌어내리고 목과 어깨의 가느다란 뼈를 뜨겁게 만들어주고 싶을 뿐. 뜨거운 상처를 주고 싶다 붙잡아 벗기고 안아 울리고 싶다,
나의 지배적 욕망이란 결국 그런 것 나는 변한 게 없다. 변한 게 없다. 너는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무방비한지 어쩌자고 이렇게까지 예쁜지. 너는 변한 게 없다.
이런 기다림이 또 어디 있는가.
도넛 배달 왔습니다~
"와, 소장님!"
"커피 가져올게요."
"세상에, 이게 다 몇 박스야?"
"와, 소장님!"
"커피 가져올게요."
"세상에, 이게 다 몇 박스야?"
수요일엔 항상 1+1 행사잖아요.
"소장님은 블랙?"
"소장님은 블랙?"
전 괜찮습니다. 곧 퇴근할 거라.
"드디어 정시에 퇴근하시네요."
"드디어 정시에 퇴근하시네요."
그러게요. 갱신일이 코앞이라... 야근시켜서 미안합니다. 다들 애인이 기다릴 텐데.
"그런 걱정은 저희 부서에선 안 하셔도 될걸요?"
"여기 다 솔로뿐이고."
"그런 걱정은 저희 부서에선 안 하셔도 될걸요?"
"여기 다 솔로뿐이고."
뭐야, 그런 거였어요? 저도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하하!"
칼라 씨도?
"하하!"
칼라 씨도?
"얘 두 달 전에 차였어요."
"그걸 말하면 어떡하냐!"
"그걸 말하면 어떡하냐!"
아하하, 내가 아픈 구석을 건드렸네. 그래도 이 시기만 지나면 휴가도 있고 야근도 없으니까 조금만 더 힘내주세요.
어, 프... 소장님.
샌즈. 도넛 배달입니다.
사식인가요? 감사합니다. 마침 커피 가져왔는데...
뭐 줄까? 골라봐요.
그럼 글레이즈드로.
손에 묻는다, 조심하고.
어어, 그래. 넌 안 먹어?
난 저녁에 엄마랑 외식이야. 팰리스 그릴 가려고.
거기 맛있더라. 술도 좋고... 토리 안 취하게 조심해.
그래, 설마 또 파이를 던지시겠어.
전 이만 가볼게요. 수고하세요.
"방금 두 분 반말하셨네요."
어... 쟤... 소장님네 어머니가 나랑 친구에요.
어... 쟤... 소장님네 어머니가 나랑 친구에요.
"정말요?"
그래도 여긴 직장이니까.
그래도 여긴 직장이니까.
외식이라. 나도 파피루스한테 연락 좀 해야지...
샌즈?
불이 켜져 있다.
아무리 바빠도 금요일 저녁에는 일찍 퇴근하는 게 보통이다. 아직 밝은 연구실은 여기뿐. 이 시간까지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면...
...역시 너구나.
하얗고 동그란 머리가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다. 손에 펜을 그대로 쥔 채다. 빈 머그에 손을 대어 보았다. 희미하게 남은 온기. 잔 가장자리를 한 번 쓸었다.
샌즈, 잠깐 일어나 볼래.
등을 두드리면 비몽사몽 일어난다. 깬 건지 덜 깬 건지는 내가 잘 안다. 가운이 구겨져 있고 담배 냄새가 옅다. 손을 살짝 감쌌다.
응... 어... 프리스크.
많이 졸려?
아니, 미안. 언제 잤지... 몇 시야?
10시 49분. 왜 안 가고 있어. 파피루스한테 연락은 했고?
으, 세상에.
좀 보고 싶은 게 남아서... 늦게 간다곤 했으니까...
...보니까 하루 이틀 밤 샌게 아닌데.
괜찮아, 다 깼어. 조금만 더 있다 갈게.
퇴근하자, 어?
팔을 잡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다. 정말 많이 졸리구나 싶어서, 뺨에 손을 대어 보았다. 모르겠지. 모르겠지.
차가운 이 감촉.
...아니면 내 사무실... 간이침대에서 눈이라도 잠깐 붙여. 엎드려 자지 말고.
...침대가 있어?
있어. 손.
아, 도저히...
thanks... 30분만 빌릴게.
보폭이 좁은 걸음이 천천히 따라온다. 힘없는 손 뼈마디가 내 손바닥 안에서 움직이지도 않는다. 계단을 오르는 움직임이 느리고 예쁘다. 안아올리고 싶다.
네 경계가 무뎌진 것이 기쁘면서도 아쉽다. 나는 널 좋아한다고도 말했는데. 우리 사이에서는 그게 성애가 될 수 없는 거지. 너한테는.
어쨌든 너는 지금 내 손을 잡고 있어.
*끼익*
샌즈, 올라가야지.
이거 베고, 이거 덮고. 응.
응, 착하다.
30분...
알았어요. 걱정 마.
곧 완전히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침대 위의 흰 몸. 신에게 바칠 제물 같았다.
그게 누구인가? 신이 누구인가?
이 장면을 나의 생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걸어둘 것이다. 붉은 색으로 구멍이 뚫린 가슴팍 위에 대못을 박아 고정시켜라. 피가 철철 흐른다 한들 괜찮으니 목을 긋고 피로 손을 적시고 사랑을 고백하라. 이게 내 의지가 아니더라도 나는 좋아, 좋다, 사랑에 빠진 자는 어쩔 수 없이 어리석다.
30분은 너무 짧아. 나한테 시간을 조금만 더 줘.
좋은 꿈.
여기 자주 와?
자주는 아니지만 좋아하는 펍.
인기 있는 것 같더라. 커피만 마셔봤는데...
맞아, 커피 맛있지. 와본 적 있구나.
그저께 한 번.
아하.
뭐 시킬 거야?
고르곤졸라 크로크 무슈... 너한테는 별로일 것 같은데. 이거 어때?
그럼 그걸로.
실례합니다. 주문할게요.
식기 소리.
토마토, 베이컨, 치즈. 케첩 향이 살짝 난다. 네 식사를 준비할 때 꼭 있었던 것들.
너도 피곤했나 봐. 너무 곤히 자길래... 오히려 내가 깨웠잖아.
으음... 엎드려서 잤더니 등이 아파.
그 침대 좋던데. 연구실에도 하나 놓으면 안 돼?
왜, 아주 살게? 파피루스한테 혼난다.
안 그래도 혼났어. 제때 연락 안 했다고. 좀 일찍 와주지 그랬냐.
내 탓하는 거야? 그럼 다음엔 꼭 일찍 쫓아내드릴게요. 아저씨.
아저씨?
포크가 멈췄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큰 웃음소리가 좋다.
동네 애들이 해골 아저씨라고 하긴 하더라.
그래, 해골 아저씨. 농담 아니고 진짜 퇴근해야 해. 계속 그러면 내가 곤란해져.
곤란해? 왜?
지상에는 노동법이라는 게 있거든. 법정 근무시간을 지켜야 하고... 나는 네 고용주니까.
맞다, 잊고 있었네.
계속 이러면 갱신일 끝나고 유급휴가를 줘버릴 거야. 2주 정도?
알았어, 알았어. 쉬면 되잖아.
내일은 연구소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세요.
예. 알겠습니다.
잘 먹었다. 계산서 좀.
내가 할게.
야, 괜찮아.
부담 갖지 마. 어차피 식대로 나가니까.
그러냐? 그럼 뭐.
주말 잘 보내고.
그래, 푹 쉬어. 파피루스한테 안부 전해줘.
음?
저기서 뭐 하고 있는 거지?
담배? 아닌데...
"왜 그래요?"
아, 소장님이 저 밑에 계셔서.
아, 소장님이 저 밑에 계셔서.
"담배 피우시나 보죠."
"소장님 담배 안 하시잖아요."
"시등급 재고 계신가?"
"푸핫."
"소장님 담배 안 하시잖아요."
"시등급 재고 계신가?"
"푸핫."
...
소장님은 어떤 분이세요?
"네? 아는 사이시라면서요?"
그냥 궁금해서... 또 요 몇 년간은 둘 다 일이다 뭐다 정신없었거든요.
그냥 궁금해서... 또 요 몇 년간은 둘 다 일이다 뭐다 정신없었거든요.
"음... 별로 흠이 없는 분이랄까..."
"입발린 말이 아니라요. 업무로만 보면 당연히 흠잡을 구석이 없죠. 딱히 사적으로 많이 뵙는 것도 아니고."
"아, 맞아."
"입발린 말이 아니라요. 업무로만 보면 당연히 흠잡을 구석이 없죠. 딱히 사적으로 많이 뵙는 것도 아니고."
"아, 맞아."
"그런데 그만한 열정으로 올라가신 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저희에게 기대가 없으시다고 해야 하나."
"못해도 잘해도 그만이란 느낌이라서."
"저희에게 기대가 없으시다고 해야 하나."
"못해도 잘해도 그만이란 느낌이라서."
좋은 상사인지 아닌지 참.
"그런 느낌이에요. 내가 잘 하고 있는 게 맞나? 싶고."
"뭐, 작은 천문대라고 해도 겨우 2년 만에 수석까지 다신 분이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다 그저 그래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뭐, 작은 천문대라고 해도 겨우 2년 만에 수석까지 다신 분이니까.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다 그저 그래 보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또 능력이 좋으시잖아요."
"소장님 바뀌시기 전이랑 지금이랑 예산 규모가 다르긴 하죠."
"전 여기 좀 오래 있었는데 지금만큼 넉넉한 때는 없었거든요."
그래요?
"소장님 바뀌시기 전이랑 지금이랑 예산 규모가 다르긴 하죠."
"전 여기 좀 오래 있었는데 지금만큼 넉넉한 때는 없었거든요."
그래요?
"샌즈 씨도 그랬죠? 장비가 굉장히 좋다고. 누구 덕이겠어요."
"그런 거 보면 여기 처박혀서 하늘만 보실 분으로는 안 보인다니까."
"그리고 우린 그럴 사람이고."
"하하하."
"그런 거 보면 여기 처박혀서 하늘만 보실 분으로는 안 보인다니까."
"그리고 우린 그럴 사람이고."
"하하하."
... ...
역시 알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혼자 선 뒷모습이 꽤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는다. 뭘 찾고 있는 건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꽤 가까워진 것 같다고도 생각했는데 도대체 감이 안 잡힌다.
이게 아닐 텐데. 아니... 아니길 바라지만. 나는 도저히 네가...
"샌즈 씨."
아, 네.
아, 네.
네가 바라는 게 이런 것 같지가 않아.
곧 유성우가 내릴 것이다.
한 시간에 수백 개, 수천 개. 모든 사람들이 아름답다고 말하겠지만 나는 모르겠다. 반짝이는 것들이 떨어질 때 아름답다면 아름답지 않은 게 어디 있을까.
이곳에서 일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사람을 상대할 일도 웃을 일도 없다. 하지만 나중에, 아주 나중에 또다시 이 일을 할까? 물어본다면 고개를 저을 것이다.
별처럼 변함없는 것도 없다. 우주는 일기보다 더욱 절대적이다. 이 작은 행성에서 일어나는 일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지. 나는 우주를 되감고 다시 재생시킬 뿐 이 아득한 코스모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리가. 있나.
별이... ...
나는 그냥 똑같은 테이프를 영원히 봐야 하는 거야.
이 의지를. 이 힘을 누군가에게 줘 버리면 좋겠다.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친구. 카페 점원. 버스 옆 좌석에 앉은 사람 누구라도 좋다고. 그게 가능하다면 나는 누군가의 조연으로 살면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무지가 가장 안온한 침실이지 않을까?
지금의 나는 주인공이며 행복해지기는 아주 어렵다.
그러지 않는 것은 다른 사람이 짊어질 무게 때문이 아니다. 이따위 삶 누군지 알게 뭔가.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이 세계에서 조연으로 산다는 게 얼마나, 의미 없고 끔찍한 일인지 알고 있다.
알고 있는데 어떻게 모르던 때로 돌아가겠는가?
누군가를 죽이고자 했고 죽여보았고 먼지를 뿌리고 땅에 묻고 남의 운명을 내 손으로 꺾고 부수고. 아, 전부 너무 쉽지. 먼지만 한 행성의 먼지만도 못하게 사는 일. 난 그렇게 못해.
내 정신이 무너지지 않았다면. 내 영혼이 꺼지지 않았다면 나는 아직 덜 망가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덜 불행하다는 증거다. 이렇게 사는 주제에 존엄성을 따져?
아직 살만하구나.
항상 죽기를 바랬는데. 그래. 나는 덜 불행해졌다.
별이 떨어진다면 이곳으로. 꽃을 닮은 사람이 너를 사랑해 너를 사랑해 매일 고백한다.
*똑똑*
...없나?
프리스크?
불러도 대답이 없다. 문도 열어두고... 화장실이라도 갔나.
프리스크, 들어간다.
...
자고 있다.
대낮부터 웬일이지. 많이 피곤한 것 같다. 좀 작아 보이는 간이침대에 몸을 구기고 팔로 눈을 가린 모양이 꽤나 불편해 보인다. 생각 없이 열고 들어왔는데도 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자는 걸 본 적이 있다. 한창 조약 문제로 시끄러웠던 때였지. 함께 토리엘 밑에서 일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달라 오히려 얼굴 볼 일이 적었다. 그때는 정부 일 때문에 일주일 넘게 철야를 했다고 했는데.
웬만하면 깨우고 싶지 않지만...
꼬맹아. 정신 차려.
아니, 응... 5분만... ...
정신 차리라니까. 너 전화 꺼놨어? 토리가...
어... 샌즈.
뭐...
야... 프리스크?
전화 무음이라... *하품* 퇴근 안 했네.
갑자기 잡혀서 놀랐다. 덜 깬 건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이제 가야지. 토리가 전화했어. 너 오늘 올 수 있겠냐고.
어, 퇴근해... 푹 쉬고 다음 주에 보자...
무슨 소리야. 파피루스가 쫑파티 해주기로 했잖아. 그래서 다들...
...음, 이거 계속 잡고 있으려고?
뭘?
아. 미안, 잠이 덜 깨서... *기지개* 놀랐지.
파티가 오늘이었나. 오늘... 나 더 자고 싶은데. 엄마가 전화하셨어?
어어. 피곤하면 말해. 난 그냥 같이 퇴근할까 했지.
아냐, 파티까지 해주는데 가야지. 오랜만에 파피루스도 보고... 맥주 마시고 싶다.
깨워줘서 고마워.
그래. 그럼 준비해. 밖에 있을게.
잠버릇인가. 아니면 꿈이라도 꿨나.
잡혔던 손이 뜨겁다. 묵직한 추가 매달린 것 같이 이상하다. 왜 이렇게 꺼림칙한 기분이 드는 거지?
일이 끝난 책상을 대강 정리하고 간이침대를 접었다. 가운을 걸고 차 키를 챙기고...
오른손. 내 오른손으로 잡은 왼손. 흰 손등, 선명한 뼈마디, 손가락 사이를 파고들어 꽉 쥐던 습관.
피곤해. 피곤하다. 이틀 밤을 새운 것보다 잠깐 얼굴 보는 게 더 그렇다. 잠깐만 긴장을 놓으면 실수하는 게, 이미 내 통제를 벗어난 것 같다.
나는 네가 내 눈을 보는 일이 없길 바래. 아직은 아니야. 그러니까 의식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평범하게, 평범한 친구로 동료로. 할 수 있지?
있겠지?
다 됐어, 가자.
...그래.
정신없이 며칠이 지났다.
일주일 사이 천문대의 연구 갱신을 무사히 마친 후 학회에 출석했다. 연구 성과 발표와 인터뷰 몇 개. 플로리다에서 다섯 밤을 보냈다. 잘 시간은 거의 없었으나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이 도시는 너무 조용해. 돌아오자마자 듣고 싶은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착각을 떨치려 체육관에서 두 시간을 내리 달렸다. 차가운 물을 한참 맞고 있으니 비 오는 날 같기도 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오래된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고 천천히 달렸다. 마른 땅에 깔려있는 밤공기. 숨을 고르게 뱉으려고 노력했다. 돌아가는 길에 너의 집을 지나쳤다. 거실 불빛이 희미하게 새어나오고 있었다. 깨어 있는 걸까? 궁금했지만 궁금해 하기만 했다.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거리에서 사적으로 만나는 일 없는 이 관계가 우리의 거리다. 친구의 양아들, 직장 동료, 괜찮지 않은가?
더 가까워지지 않아도, 더 멀어지지 않아도 괜찮겠지?
... ...샌즈?
그리고 가로등 불빛 아래. 낮은 돌담을 지나 누군가가 다가왔다. 희끄무레한 빛이 환상 같기도 했다. 여름밤에 백열광처럼 타오르다 죽는 환상. 착각이라면 영원토록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니었다. 너는 항상 이런 식으로 계획과 예상을 깨고,
야, 오랜만이네.
웃는 얼굴에서 어색함을 봤으면서도 나는 어쩔 수가 없네.
오랜만... ... 늦었는데 어디 가?
담배가 떨어져서. 넌 출장 아니었어?
오늘 돌아왔거든. 지금은 운동 갔다가 집 가는 길... 가게 문 닫을 시간 아닌가.
아슬아슬했지. 그래도 이것도 샀다.
버드와이저네.
너 목 안 마르냐?
그렇게 웃으면 안 마르던 목도 타들어가는 게 나다.
여기 좋더라고. 낮엔 교회 때문에 좀 시끄럽지만.
맞아, 찬송가 들리지. All to Jesus I surrender...
all to him i freely... 뭐더라...
Give.
어어. 하도 들려서 외울 지경이라니까.
하하.
좀 어때? 많이 쉬었어? 들어오자마자 정신 없었지.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막판에 끼어들어서 정리만 좀 도운 수준인걸.
그게 얼마나 도움 됐는지는 내가 알지. 이제 좀 한가할 테니까 개인 연구도 진행할 수 있겠네.
그래, 개인 연구...
관심 있는 분야 있어? 슬슬 정하잖아.
으음.
빡빡한 일정에 쫓기던 나날이 끝나고 나니 오히려 견디기 힘들어진다.
진작 포기했다고 했으면서 마치 떠밀린 것처럼, 못 이기는 것처럼 받아들였지. 내 욕심 때문에. 다른 방법도 분명 있었을 텐데.
연구직이라니. 하늘과 우주와 별이라니. 널 의심하는 주제에 이게 무슨 짓인지...
시간이 생기면 생각이 많아지는 버릇. 너는 자신에게 가혹할 만큼 엄격하다. 즐거우면 죄책감이 들지. 휴가가 독이었군.
책임감이 강한 만큼 금방 그만둔다고는 하지 않겠지만...
느긋하게 고민해.
권한 없는 자료 필요하면 나 찾아와. 아카이브에 등록된 논문 볼 수 있을 거야.
...아카이브? 네 거?
매번 사수한테 묻기도 그렇지? 눈치 안 봐도 되니까.
아니... 그런 거 막 보여줘도 괜찮은 거야?
기밀도 아니고... 권한만 있으면 다 볼 수 있는데 뭐.
하지만.
집중할 게 생기면 좋겠지.
...내 생각을 알고 하는 말인가? 설마.
맥주도 바람도 시원하네... ...
그러게.
여기 해바라기도 있었구나.
흔들린다.
그러고 보니 천문대 로고가 해바라기였지.
응.
왜 해바라기야? 천문대랑 안 어울리지 않나?
해바라기는 태양을 보잖아. 우리도 마찬가지지.
해바라기 싫어해?
별로 생각해본 적 없는데... 그거 네가 바꾼 거였어?
나는 좋아해.
음?
해바라기 말이야.
이제 슬슬 갈까? 내일 출근해야지.
어어... 그래.
잘 가.
내일 보자.
별은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언덕이나 나무 위로 올라가도 전혀 가까워지지 않는다. 달은 천천히 움직이며 별 앞으로 지나가지만, 나중에 보면 별이 다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달은 별을 먹지 않는다. 그러므로 별들은 분명 달 뒤에 있다.
별들은 반짝인다. 그들은 기묘하고, 차가우며, 멀리 떨어져 있는 빛이다. 많기도 하다. 온 하늘에 널려 있다. 하지만 밤에만 하늘에 나타난다. 그들은 도대체 무엇일까? 대체 이게 무엇이라고 너는 그렇게 끝없는 눈으로 밤하늘을, 별을 볼까?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은하수를 밤하늘의 등뼈라고 말해. 그렇게 속삭였더니 나를 보고 놀라는 그 얼굴이 아직 또렷했다. 몇 번째 삶이었지? 그건 떠올릴 수 없지만. 제 몸의 일부가 밤하늘에 있는 기분은 어떨까 궁금했고 너는 참 아름답다고 말했다.
예쁘다고. 맞는 말이라고.
맞아. 그렇다.
이 꽃도 이 건물도 저 별도, 밤하늘이라는 포장지에 묶어 건네면 너는 받을까.
꽃점을 보고 싶다.
찾는거 좀 있어? 한참 보고 있는데.
어... 찾는 거라기보다... 엄청나네. 이거.
엄청나긴 뭘.
유니온... 매거진... 아니, 올림피아드 수상작까지... 학계 정보는 다 있잖아. 이 데이터베이스는 어디서 만들고 있는 거야?
수석 되면 알 수 있지요.
나 지금 엄청난 월권행위 중인 것 같은데.
까짓 수석 달면 되지. 2년 내에 된다고 했잖아.
그거 진심으로 한 얘기였어?
그럼. 이것도 다 미래를 위한 투자인데. 내가 아무 이유 없이 이럴 것 같아?
순수한 호의인 줄 알았는데 이거 당했네... 이것 좀 출력해도 될까.
잠시만. 프린터 켤게.
한 장 한 장 쌓이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을 메운다. 이런 특혜 같은 건 당연히 거절했어야 하는데. 직접 보니 그러기가 힘들다. 정말 수석이 될 거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도넛 고마워. 빈손으로 와도 되는데 꼭.
그 정도야 뭐. 너 점심 먹으러 안 왔더라.
오리 요리는 별로 안 당겨서.
집 아니라고 편식하기는.
그거 진짜 맛없지 않았어?
난 괜찮던데. 오렌지 소스랑 나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설마 거기에도 케첩 얹어 먹어?
yup.
세상에.
나 회의 때문에 잠깐.
어, 그래. 벌써 시간이 이렇게...
괜찮아. 보고 싶은 만큼 보고 가도.
무슨 소리야. 나도 일어나야지.
나갈 필요 없어.
아니, 그래도...
나갔다.
정말 이래도 되나. 아무리 아는 사이라도 소장실에 혼자...
... ...
깨끗한 책상... 테이블 하나, 소파 둘. 커피 머신 하나. 빈틈없이 메워진 책장들.
문서와 서적은 칼같이 정리되어 있다. 설마 전부 알파벳 순인가? 정리벽 있는 건 보좌관 시절부터 알았지만.
테이블이고 창틀이고 그 흔한 화분 하나 보이지 않는다. 토리엘과는 완전히 달라. 걸린 액자라고는 임명장과 상패 뿐.
한쪽 벽에 세워진 간이침대가 보면 볼수록 이질적이다. 사람이 오래 머무는 공간 같지가 않아. 마치...
...너무 나갔나.
됐다. 너무 깊이 생각해도 안 좋아.
누가 오기 전에 끝내야지...
xx. x. xxxx
소장 취임 축하해. 놀랐어.
소장 취임 축하해. 놀랐어.
네가 천문대에서 일하기 전 내 일기는 여기서 멈추어 있었다. 겨울이었고, 입김이 났었고, 너는 파피루스가 둘러 준 파란 목도리를 하고서 내게 꽃다발을 내밀었다. 겨울이었는데.
너는 아마 빈손으로 올 수는 없어 토리엘에게 내가 좋아하는 색을 물어봤을 것이다. 먹을 걸 사가자니 내 입맛에 대해 아는 게 없어서.
어느 꽃집에 갔을까. 스테이트 스트리트? 데 라 비나? 발길 닿는 곳에 들어가서는 둘러보지도 않고 '아는 사람'이 승진했다며 꽃다발을 부탁했겠지.
나는 하얀색을 좋아한다고 말해두었다. 달을 깎은 색. 인간의 손톱보다 더 새하얀 뼈의 빛깔.
너는 라넌큘러스 하노이 아홉 송이로 엮은 꽃다발을 내게 주었는데, 사실 나는 받고 싶지 않았다. 그 큰 꽃송이를 옆으로 안은 네가 너무 현실 같지 않아서. '이런 너를 또다시 볼 수 있을 줄은 몰랐어.'
하늘은 왜 이렇게 맑고 너는 구름보다 가볍게 떠 있는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너 그 꽃이 부케로 쓰이는 건 알고 있어? 나는 웃었다.
일기를 쓸 때 나는 많고 많은 문장을 꾹꾹 내리누른다. 무엇을 적어내릴지 고민하는 밤이 계속된다. 내가 어떤 생각으로 너를 봤는지 잉크가 모자라도록 쓰고 싶다 하지만, 나는 언제나 네 목소리가 들리는 한 문장만 정성스럽게 쓴 후 일기를 덮는다. 탁.
x. xx. xxxx
All to him I freely
All to him I freely
Give. 그분에게 나는 기꺼이 모든 것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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