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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온실의 꽃



우리는 정상적인 삶을 살지는 못했다. 프리스크는 완전히 새롭고 예측할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했다. 나에 대해서도. 그러나 다시 누군가를 해치는 일은 없었다. 나는 불안에 떠는 그를 평생에 걸쳐 달랬다.
나도 제정신은 아니었다. 동생을 생각하는 밤이 많았다. 그때마다 프리스크는 곁에서 나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게 거북했던 시절도 있었지만 한때였다.
프리스크는 곧 소장직에서 물러났다. 아쉬워하는 이들에게 건강상의 이유라고 말했다. 확실히 건강이 좋지는 않았다. 몸 안도 밖도 상처가 많았다. 내가 아픈 곳들을 쓰다듬어 주면 그는 아주 기뻐했다. 프리스크는 곧 꽃집을 열었다. 나는 온실에서 프리스크가 가만히 앉아 있을 때마다 그가 꽃이 되어 사라질 것 같았다. 기묘하고 쓰디쓴 느낌이었다. 나는 그 장소가 이유도 없이 거북했지만 그는 그 곳이 무척이나 안정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병원에 가지 못하는 환자였으므로 나는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나는 2년 만에 수석연구원을 달았다. 프리스크에게 소식을 전하니 할 수 있다고 했지 않냐며 웃었다. 그리고 늦은 밤에 단 둘이서 파티를 열었다. 술을 많이 마신 그날 우리는 처음으로 몸을 섞었다. 나는 그가 닿는 모든 곳이 아팠고 괴로웠지만 그가 우는 것을 보고 괜찮다 했다. 나는 천문대의 네 번째 소장이 되었다.
어느 날 프리스크에게 노트를 주고 해보지 못한 것들을 적어보라고 말했다. 그는 없다고 했다. 그럼 나와 함께 하고 싶은 것들을 적으라 했다. 그는 곧 노트 절반을 채웠다. 소소하고 작은 것들이었다. 반지를 주며 프로포즈하기, 그런 소년 같은 꿈. 나는 이것은 다음의 나를 위해 남겨두자고 말하며 그의 왼손 약지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그는 정말 많이 울었다.
언젠가 함께 웨딩 프로를 보며 이런 것을 하고 싶지는 않냐고 물었더니 하지 않을 것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 것은 형식일 뿐이라고. 다음 삶에서 분명히 그것을 비교하게 될 거라고. 턱시도 주름까지 잊지를 못해 괴로울 거라고. 그는 나에게 매일 꽃 한 송이 주는 삶을 살 거라 했다. 나는 그날 밤 내내 그를 쓰다듬어 주었다.
파피루스의 십주기에 천문대를 그만두고 비행기에 올랐다. 목적지나 기한이 있는 여행은 아니었다. 우리는 먼 이국의 땅으로 가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경험했다. 프리스크는 대부분의 언어를 할 줄 알았지만 그 행동에 더 이상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 일은 없었다. 아침마다 그의 이마를 쓸어주며 잠을 깨우는 것이 내 일이었다.
프리스크는 흰머리가 나기 시작할 때까지 온실을 가꾸었다. 아무리 오래 꽃가위를 다루어도 손끝의 상처는 마를 일이 없었다. 나는 그가 일부러 그러는 것을 알았지만 아무 말 하지 않고 약을 바르고 밴드를 붙여주며 상처에 입을 맞추었다. 그러면 그는 세상을 다 얻은 듯한 얼굴을 하고 웃었기 때문이다.
프리스크는 비 오는 날마다 상처가 아프다고 했다. 몇 십 년 동안 그랬다. 그는 인간 수명의 절반 정도를 살았다. 그의 침대에 모여든 모두가 너무 짧다고 탄식을 했다. 마지막은 둘이서 맞이했다. 그는 평소에 눈물이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울지 않았다.
샌즈.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
어떤 게 무서워. 다 말해봐.
다음의 네가 나를 사랑하는 지금의 너와 다르면 어쩌지?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와 다른 대답을 했어. 예전의 너도 지금의 너와 달랐어. 하지만 언제나 본질은 같아. 잘 보면 모든 사람이 그럴 거야. 너 또한 그런 존재야.
언젠가 내가 너에게까지 질려버리면 어쩌지?
너는 나뿐만 아니라 네 삶을 사랑해야 해. 세상을 사랑해야 해. 네가 영원히 사는 존재이기 때문에. 너를 위해서. 그건 정말로 힘들겠지. 하지만 할 수 있을 거야.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너는 나만을 보고 있었지만 이번 삶에서조차 네가 알지 못한 많은 것들이 있었지. 과거와 지금의 내 대답이 다른 것처럼. 언젠가 정말로 네가. 모든 것을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샌즈.
너는 계속 가야 돼. 나는 같이 못 가. 하지만 넌 계속 가야 돼.
샌즈.
네가 얼마나 멀리 가더라도. 내가 모든 걸 잊더라도.
샌즈.
나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야. 계속 네게 말을 걸 거야.
사랑해.
나도 너를 사랑해.
나는 프리스크의 장례식에 참석했다. 모두가 그의 편안하게 잠든 얼굴을 보고 싶어 했지만 그는 만약 제 장례식을 열 수 있다면 꼭 화장을 하고 싶다고 내게 속삭였었다. 그 날이 실제로 올 것이라고는 그도 나도 생각하지 못했으나 나는 그 말을 따랐다.
나는 아주 깨끗한 유리창 너머로 그의 새하얀 뼈가 천천히 타는 것을 지켜보았다. 넓은 판 위에서 날카로운 흰 몸뚱이가 형체 없이 누워 있었다. 이제 누구인지도 모를 조각들이 네모난 상자에 담겨 나왔지만 나는 이게 그인 것을 알았다. 뜨겁고 묵직한 뼛가루에서는 그의 냄새가 단 하나도 나지 않았지만. 그였다.
내가 대표로 추도사를 읽었다. 주위를 둘러보라. 하늘이 심하게 푸르렀고 많은 이들이 울었다. 지구의 오랜 연대기에 나오는 모든 예언자를 오늘 여기서 기린다. 네가 어떤 형식을 이야기했건 네가 옳았다.
나는 장례식이 끝나기 전에 사라져 집으로 갔다. 그가 어느 날부터 쓰지 않게 된 일기를 모두 펼쳤다. 내가 했던 말 뿐이었다. 나는 그때서야 후회했다.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 끝이 닳은 코스모스를 또다시 읽고 해가 진 후 오리온 성운을 오랫동안 보았다. 새벽이 되어서야 그와 함께 썼던 침대에 들어가 그의 잠옷을 덮고 깊은 잠을 잔 후 그 곳을 떠나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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